괜찮다는 말 뒤의 진실 (자기기만, 관계, 질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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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힘들어 보이는데도 늘 “괜찮아”라고만 말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진짜 괜찮은 줄 알았죠. 그런데 대화를 나눌 때마다 묘하게 찜찜함이 남았습니다. 웃긴 웃는데 눈은 덜 웃는 느낌, “요즘 어때?” 같은 가까운 질문에 대답이 갑자기 짧아지거나 화제를 돌리는 방식. 어느 날은 괜찮다더니 며칠 연락이 끊겼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오기도 했고요.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말만으로는 상황을 판단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럴 때 마음이 급해집니다. “거짓말이야?” “나를 밀어내는 거야?” 결론을 먼저 내리고 싶어지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꼭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버티게 하는 문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기기만을 ‘단정’하지 않기 자기기만(self-deception)은 학문적으로도 정의와 메커니즘을 두고 논쟁이 있지만, 최소한 “동기나 감정 때문에 불편한 현실을 덜 보게 되는 상태”로 설명되곤 합니다. 철학 쪽에서도 자기기만을 다루며, 단순한 ‘거짓말’과는 다른 층위로 보기도 합니다(Deweese-Boyd, 2006). 심리학 연구에서도 자기기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Sackeim & Gur, 1979; von Hippel & Trivers, 2011). 여기서 제가 조심하고 싶은 건, 누군가의 “괜찮아”를 곧바로 “자기기만이다”라고 판정하는 태도입니다. 그 말이 습관인지, 방어인지, 정말로 괜찮아서인지—외부에서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말과 행동이 자주 어긋나는지’ 정도는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 지점이 더 현실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불일치가 남길 때: ‘거짓말’보다 ‘신호’로 보기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자주 엇갈리면, 우리는 쉽게 “나를 속이는구나”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해석이 늘 정확하진 않았습니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눈빛이 불안해 보이거나, 질문이 조금만 깊어지면 ...

외로움의 정체 (피상적 관계, 침묵의 의미, 진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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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로움을 '혼자 있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진짜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단체 채팅방에서 끊임없이 알림이 울리고, 주말마다 약속이 잡혀도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기진맥진한 느낌. 이건 단순히 내향적인 성격 탓이 아니라, 우리가 '연결'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때로는 정서적 연결감이 약한 접촉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연결이 약한 관계가 소진을 부르는 이유 예전엔 모임에 안 나가거나 단톡방이 조용하면 괜히 불안했습니다. 모임이 계속되거나 대화가 계속 이어져야 제가 관계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임이 잦거나 단톡 알림이 쌓일수록 몸과 마음이 피곤해졌습니다. 농담에 맞장구치고, 빠르게 대답하고, 분위기를 맞추는 일이 점점 '할 일'처럼 느껴졌죠. 저는 이 과정을 흔히 말하는 '감정 노동(Emotional Labor)'과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다만 이 개념은 원래 직장처럼 역할이 분명한 환경에서 감정 표현을 관리하는 맥락에서 자주 쓰이기 때문에, 사적인 관계에서는 '감정 조절'이나 '감정 관리(emotion work)'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Hochschild, 1979). 어쨌든 중요한 건, 제 진짜 감정을 잠깐 접어두고 상황에 맞는 반응을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쓴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결감이 낮거나 관계에서 긴장이 지속될 때 스트레스 반응이 커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Hopf et al., 2022). 반대로 가까운 관계에서 신뢰와 유대가 형성될 때, 마음이 안정되는 경험이 늘어나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다만 제게 더 확실했던 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날은 몸이 풀리고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남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

가면은 위선일까 (상냥함, 본모습, 단정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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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저는 일부러 겉모습을 바꿔 격식있게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덜 흔들렸고, 말도 또렷해졌거든요. 그 모습이 ‘진짜 나’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덕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언제나 상냥하던 사람이 갑자기 차갑게 대한다면, 그건 가면을 벗은 그 사람의‘진짜 모습’일까요? 사회에서 만난 상냥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차가워졌을 때,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가면이 꼭 위선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더 외향적이고 어른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려 애쓴 적이 있습니다. 본래 성격과는 조금 달랐지만, 맡은 역할을 수행하려면 필요한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persona)는 사회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 개인이 쓰는 ‘공적인 얼굴’ 혹은 ‘가면’에 가깝습니다(IAAP, n.d.). 저는 그 개념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면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더군요. 불안한 상황에서 제가 기능을 해낼 수 있었던 건 그 장치 덕분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조금 더 전문가처럼 행동하거나, 회의에서 침착하게 말하려는 노력도 결국은 ‘사회적 역할’과 맞물려 있습니다. 고프만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상황에 맞춰 자신을 제시하며, 그 과정에서 ‘역할에 맞는 나’를 구성하기도 합니다(Goffman, 1959). 제가 보기엔 가면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가면이 ‘상황에 맞춘 조절’이 아니라, 타인을 속이거나 해치기 위한 도구로 굳어질 때입니다. 다시 말해, 가면 자체가 곧 위선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 가면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고 반복되는지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느꼈습니다. 상냥함도 가면이 될 수 있다 저는 늘 상냥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차갑게 말하는 장면을 직접 겪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했고, ‘상냥함도 가면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는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 이거였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