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중독 (뇌 가소성, 인지 예비능, 디지털 디톡스)

2024년 옥스퍼드(Oxford Languages)가 올해의 단어로 ‘brain rot’를 골랐다는 소식을 보고, 저는 좀 찔렸습니다. 직역하면 ‘뇌 썩음’에 가깝고, 옥스퍼드는 이를 “가볍고 도전적이지 않은(특히 온라인) 콘텐츠를 과하게 소비한 결과로 정신적·지적 상태가 나빠지는 것”으로 설명하더군요. 그 문장을 읽는데, 제 하루가 그대로 겹쳤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 물이 끓는 동안, 잠들기 직전.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릴스를 켭니다. ‘잠깐’이 길어지더니, 30분이 지나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해야 할 일 앞에 앉으면 어색한 공백이 생깁니다. 집중이 “완전히”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긴 호흡으로 들어가는 문턱이 높아진 느낌이 듭니다. 책을 펴도 문장이 잘 붙지 않고, 한 가지 작업을 시작할 때 손이 자꾸 다른 데로 갑니다. 이상하게도 그 ‘다른 데’는 늘 같은 곳이더군요. 폰 화면.

뇌는 습관에 맞춰 바뀐다

뇌가 반복되는 경험에 적응한다는 이야기는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아주 인상적으로 보여준 연구가 런던 택시 기사들을 다룬 연구였어요. 내비게이션 없이 복잡한 길을 외워야 했던 택시 기사들의 뇌를 비교했더니, 공간 기억과 관련된 해마(hippocampus)에서 차이가 관찰됐습니다(아래 출처). 저는 이 연구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내 뇌도, 내가 반복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겠지.”

이게 희망이 되는 이유도 있고, 찜찜한 이유도 있습니다. 희망은 단순합니다. 다시 길게 읽고, 길게 생각하고, 길게 붙잡는 시간을 늘리면 뇌도 그쪽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 찜찜함도 단순합니다. 숏폼처럼 짧고 강한 자극을 반복하면, 내 주의력도 그쪽으로 ‘정렬’될 수 있다는 점. 제 일상에서 바뀐 건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이었습니다. 책 한 챕터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나—그 질문을 자주 하게 됐습니다.

인지 예비능이 떠올리게 한 것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라는 말은 “뇌에 변화가 있어도 기능이 비교적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떠올리면, 한 가지가 먼저 생각납니다. 뇌를 ‘한 가지 방식’으로만 쓰지 않는 생활이었어요.

요즘 제 하루는 솔직히 단조롭습니다. 출퇴근길에도, 식사 중에도, 잠들기 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스크롤. 스크롤. 스크롤. 그러다 문득, 내가 뇌를 “계속 같은 근육만”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수녀 연구처럼 장기 추적 연구에서 강조되는 메시지 중 하나도 비슷하잖아요. 읽고, 쓰고, 가르치고, 몸을 쓰는 일이 섞일 때 ‘다른 회로’를 함께 돌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 저는 이걸 치매 예방 같은 거창한 목표로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지금의 내 하루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였어요.

디지털 디톡스라고 부르기엔 소소한 시도

제가 바꾼 건 ‘결심’이 아니라 ‘구조’에 가까웠습니다. 폰을 끊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더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대신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폰 없는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산책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손이 허전했고, 괜히 뭔가 놓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까 산책 중에 떠오르는 생각이 묘하게 또렷해지는 날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사실은 정리 시간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그래서 저는 ‘실천법’ 같은 걸 크게 정해두기보다, 아래 세 가지를 가볍게 돌려봤습니다. 부담되면 하루는 빼고, 되는 것만 하는 방식으로요.

  1. 하루 30분 정도는 중간에 끊지 않고 한 가지를 따라가기(책 한 챕터, 드라마 한 편 등)
  2. 핸드폰 없이 몸을 쓰는 시간을 한 번 넣기(산책, 요리, 가벼운 운동 등)
  3. 자기 전 세 줄로 하루를 정리해보기(오늘 배운 것/잘한 것/내일 다르게 할 것)

저는 의외로 ‘세 줄’이 오래 남았습니다. 하루가 흩어진 조각처럼 느껴질 때, 짧게라도 글로 묶어두면 머릿속 소음이 조금 줄어드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글쓰기가 언어·기억·감정과 연관된 여러 과정과 함께 논의되는 것도 알고 있고(아래 출처), 제 체감도 그 방향과 크게 어긋나진 않았습니다.

숏폼을 끊겠다는 결심보다, 내 하루가 어떤 리듬에 길들었는지 먼저 보는 게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잠들기 직전, 그리고 뭔가를 시작하려는 순간에 “잠깐만”이 제일 길어지더군요. 그걸 알아차리고 나니, 자책보다는 조정이 쉬워졌습니다. 당신은 하루 중 언제 “잠깐만”이 가장 쉽게 길어지나요?


참고(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