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발화의 기능 (평판 관리, 집단 규범, 발화 위축)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요즘 그런 표현 쓰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을 때, 저는 순간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 이후로 대화가 조심스러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저 역시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옳은 말’을 한다는 감각에 마음이 뜨거워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정말 대화를 위해 그 말을 꺼낸 건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도덕적 발화가 ‘평판 관리’가 되는 순간
도덕적 발화(moral speech)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말로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그건 문제야”, “그렇게 하면 안 돼” 같은 문장이 여기에 들어가겠죠. 그런데 이런 말이 단순한 가치 판단을 넘어, 때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기능한다는 논의가 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도덕적 발화를 통해 인정을 얻거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동기를 ‘도덕적 그랜드스탠딩(moral grandstanding)’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Grubbs et al., 2019; Tosi & Warmke, 2016).
이 대목을 읽을 때 저는 제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나 공정성 같은 주제를 말할 때, 저는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의식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는 걸까요. SNS에 사회 이슈 글을 올리고 반응(좋아요/댓글)을 확인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저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긴 어렵더군요. ‘옳은 말’이 주는 자기 확신이, 동시에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를 살짝 덮어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의도’를 단정하기보다,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더 먼저 보려고 합니다. 도덕적 발화가 누군가에게는 안도(“기준이 확인됐다”)가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계(“이 자리에서 틀리면 안 된다”)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집단 규범을 세우고, 발화를 위축시키는 방식
도덕적 발화는 집단 안에서 규범을 ‘가시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이건 안 된다”라는 문장이 나오면, 그 자리의 기준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죠. 문제는 그 기준이 ‘대화를 여는 방식’이 아니라 ‘대화를 닫는 방식’으로 굳어질 때입니다. 누군가가 단정적으로 기준을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말문을 고치거나, 농담으로 돌리거나, 아예 침묵을 택하기도 합니다.
노엘-노이만(Noelle-Neumann, 1974)이 말한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의견 표현을 줄이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정치적 여론의 맥락에서 출발한 이론이지만, 저는 일상 대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분위기가 한 방향으로 굳으면, 다른 의견은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은 느낌”이나 “괜히 찍힐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조용해지곤 하니까요.
- 도덕적 발화가 ‘기준’을 세우면서, 대화의 허용 범위를 좁힐 수 있음
- 그 기준이 단정적으로 작동하면, 주변은 자연스럽게 자기 검열(말 줄이기)을 시작함
- 결과적으로 다양한 의견 교환보다 ‘무난한 동조’가 남기 쉬움
제 경험상 도덕이 대화의 출입문이 되면, 누구는 들어오고 누구는 입을 닫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떤 모임에서 특정 이슈에 대해 강하게 의견을 표명했던 적이 있는데,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가 그날 이후로 그 주제를 꺼내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너랑 그 얘기하면 무슨 말을 해도 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의 발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내가 요즘 하는 ‘점검’
예전엔 이런 상황을 만나면 “저 사람은 과시한다” 같은 결론으로 빨리 정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저를 더 피곤하게 만들더군요. 누가 정말로 과시하는지, 누가 순수한지 같은 건 밖에서 확정하기 어렵고, 그렇게 확정하려는 순간 대화는 더 쉽게 갈라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사람을 판단하는 것’ 대신, 제 말의 형태를 조금만 더 점검하는 쪽을 택합니다. 말하기 직전에 머릿속으로 짧게 확인하는 질문이 두 가지 있습니다.
- 지금 이 말은 대화를 여는가, 아니면 닫는가?
- 내가 원하는 건 이해인가, 아니면 인정인가?
답이 애매하면, 단정적인 문장 대신 질문으로 바꾸거나, 말의 온도를 낮추는 편이었습니다. “그건 안 돼”보다 “이 표현은 요즘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들렸어?”처럼요.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화가 ‘검문’으로 바뀌는 속도를 늦추는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결국 제 관심은 ‘누가 위선적인가’가 아니라, ‘내 말이 어떤 분위기를 남기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말 뒤에 침묵이 남았는지, 누군가가 더 말할 자리가 생겼는지. 도덕적 발화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그 말이 관계와 집단 안에서 어떤 기능으로 작동하는지—그리고 그 기능이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지—그쪽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최근에 내가 “옳은 말”을 하고 싶어질 때, 그 말은 대화를 넓히는 쪽이었나요, 아니면 닫는 쪽이었나요?
참고문헌(더 읽기)
- Grubbs, J. B., Warmke, B., Tosi, J., James, A. S., & Campbell, W. K. (2019). Moral grandstanding in public discourse: Status-seeking motives as a cause of moral talk. PLOS ONE. https://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223749
- Tosi, J., & Warmke, B. (2016). Moral grandstanding. (PhilArchive preprint) https://philarchive.org/rec/JUSMG
- Noelle-Neumann, E. (1974). The spiral of silence: A theory of public opinion. Journal of Communication, 24(2), 43–51. (PDF) https://vnecas.wordpress.com/wp-content/uploads/2010/03/spiral_of_silence.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