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전환용 소비 (도파민, 쇼핑중독,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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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장바구니가 제 컨디션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 것, 식재료, 갖고 싶은 물건을 “일단 담아두자” 하면서 추가하다가, 어느 날 보면 장바구니에 수십 개가 들어 있더라고요. 담는 동안엔 묘하게 머리가 맑아집니다. 정리하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데 폰을 덮는 순간부터 다시 가라앉습니다. 남는 건 물건이 아니라 “또 이랬네” 하는 찝찝함이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단순히 충동적인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제는 가끔이고, 더 자주 반복된 건 ‘둘러보기’였습니다. 비교하고, 리뷰 보고, 비슷한 상품을 또 보고, “이건 다음에” 하며 장바구니에 쌓아두는 과정이요. 그 과정이 이상하게 집중을 만들어주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 앞에서는 흐리멍덩한데, 쿠팡 화면에서는 손이 바빠지는 느낌. 그러다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기운이 빠지고요.

도파민이 주는 건 ‘행복’보다 ‘기대감’에 가깝다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말이 흔하지만, 제가 체감한 건 행복이라기보다 기대감 쪽이었습니다. 장바구니에 담을 때는 “이걸 사면 편해지겠지”, “이건 필요하겠지”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실제로 결제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 상상만으로 기분이 잠깐 올라가는 날이 있더군요. 저는 그게 ‘물건’이라기보다 ‘기대감’에 가까웠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반응은 보상을 ‘받는 순간’보다 ‘예측하는 과정’에서 더 강하게 관찰될 수 있다는 설명과도 연결됩니다(Schultz, 1997).

문제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장바구니를 채우고 나면 기대감은 금방 빠지고, 원래 있던 피곤함이나 무기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앱을 열게 됩니다. “잠깐만 더 보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그런데 반복될수록 찝찝함도 같이 커집니다. 돈을 써서가 아니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리니까요.

이런 흐름은 ‘의지 부족’으로만 설명하기엔 좀 애매했습니다. 제 컨디션이 안 좋을수록, 뇌가 손쉬운 각성 루트를 찾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기대가 생기면 잠깐 또렷해지고, 또렷해지니 그 행동이 강화되고, 다시 가라앉으면 또 찾게 되는 방식. 저는 그걸 ‘도망’이라고 부르기에도, ‘해결’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중간지대라고 느꼈습니다. 잠깐은 도움이 되는데, 오래 보면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방식이랄까요.

내가 반복한 건 ‘구매’가 아니라 ‘탐색’이었다

한동안 저는 “그냥 참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피곤한 날엔 그 말이 잘 안 먹혔습니다. 대신 눈에 들어온 건 패턴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밀려 있을수록, 마음이 복잡할수록, 장바구니가 더 빨리 불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 생필품이나 식재료는 필요하니까 담는다고 치더라도, 그 옆에 ‘갖고 싶은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더군요.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어느 순간엔 “이것도 있으면 좋지”가 계속 늘어납니다.

이 과정이 꼭 결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음이 이미 그쪽으로 많이 쓰인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시간을 쓰고, 기대를 쓰고, 집중을 쓰고요. 그리고 폰을 닫고 나면 남는 건 현실입니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있고, 기분이 가라앉게 만든 원인도 그대로 있고요. 그래서 어떤 날엔 ‘구매 후 후회’가 아니라, ‘탐색 후 자괴감’이 더 크게 남기도 했습니다. “또 이렇게 빠져나갔네” 같은 감정이요.

  1. 기분이 가라앉을수록 ‘탐색’이 먼저 시작된다
  2. 탐색 중에는 잠깐 또렷해지지만, 끝나면 다시 가라앉는다
  3. 반복되면 ‘도피한 느낌’과 ‘자책’이 함께 남기도 한다

환경도 한몫 한다는 생각

요즘은 환경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쇼핑 앱은 내가 뭘 좋아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니까요. 비슷한 상품,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가격대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필요한 것만 사자”라고 마음먹고 들어가도, 추천이 너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참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개인화 추천과 광고는 점점 정교해지고, 그걸 상대하는 쪽은 대개 피곤한 상태의 나니까요(Reuters, 2024).

내가 정한 작은 기준

요즘은 소비를 “좋다/나쁘다”로 가르려 하기보다, 그냥 한 번만 묻습니다. 지금 내가 진짜 필요한 걸 고르는 중인지, 아니면 기분을 잠깐 바꿔보려는 건지요.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결제 버튼이 조금 멀어질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컨디션이 꺼져 있는 날엔 일단 담기만 합니다. 결제는 웬만하면 다음날로 넘겨요. 다음날 아침에 다시 보면, 어제는 분명 간절했는데 “이걸 왜 담았지?” 싶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장바구니가 비더라도, 그게 꼭 손해처럼 느껴지진 않더군요. 오히려 ‘어제의 내 기분’이 잠깐 지나갔다고 느끼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큰 금액은 혼자서 빨리 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거 사도 될까?”를 누군가에게 한 번 말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식는 경우가 많았어요. 절약이 목표라기보다, 충동이 지나갈 시간을 만드는 장치 같은 느낌입니다. 말을 하는 순간에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가 제 귀에도 들리거든요.

대신 저는 책이나 전시 같은 건 조금 다르게 봅니다. 바로 기분이 확 좋아지는 건 아니어도, 끝나고 나면 “아, 내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네” 같은 게 남는 편이라서요. 반대로 기분 전환용 소비는 반짝 올라갔다가 금방 꺼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같은 돈을 쓰더라도, 남는 감각이 있는 쪽으로 더 기울어 보려 합니다.

결론은 단순해요. 소비를 없애겠다는 목표보다, ‘내가 지금 뭘 피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는 쪽이 저한텐 맞았습니다. 장바구니에 아이들 것, 식재료, 갖고 싶은 물건이 수십 개 쌓여 있는 날을 떠올리면 더 그렇고요. 그게 “쇼핑 욕구”라기보다, 내 컨디션이 흔들릴 때 나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걸 요즘은 조금 인정하게 됐습니다(Killingsworth & Gilbert, 2010).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