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중독 벗어나기 (자기 긍정, 관계 주도권, 평가 대상화)

친구와의 약속을 미루거나 거절할 때, 전 습관적으로 변명을 늘어놓던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일이 좀 많아서 그래”, “컨디션이 좀 안좋아” 같은 핑계를 먼저 덧붙이곤 했는데, 사실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쉬고 싶어”라는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머릿속에서 작성하는 것처럼, 제 선택을 계속 정당화하고 있었던 거죠.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점점 피곤해졌고, 문득 이 피로의 원인이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제 안에서 상상하는 ‘남의 시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정 욕구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 문제는, 그게 제 선택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삶의 중심이 아주 조금씩 바깥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정 욕구와 인정 중독, 어디서부터 선을 넘는가

누군가 내 전문성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 성과를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마음. 이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자존감이 사회적 수용/배제 신호를 추적하는 장치처럼 작동한다고 보기도 하죠(Leary, 2005). “좋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건, 인간이 관계 속에서 사는 방식과도 겹쳐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 넘는 지점’이 따로 있다는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인정이 없으면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불안이 커지는 순간이요. 그러면 선택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로 바뀌더라고요.

조건부 자기 가치(조건부 자존감)는 이런 상태를 잘 설명합니다. 자기 가치가 성취·외모·타인의 칭찬 같은 특정 영역에 과도하게 걸리면 외부 반응에 따라 감정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거예요(Crocker & Wolfe, 2001).

제가 딱 그랬습니다. 물건 하나를 사도, 장소를 정해도, 말을 꺼낼 때도요. 마음속에서 자꾸 “이건 이렇게 설명하면 괜찮겠지” 같은 문장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누군가’에게 계속 설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제 삶의 피로를 키운 핵심 중 하나였습니다.


“맞춰주기”가 오래 갈수록 피곤했던 이유

저는 예전에 “나는 하얀 도화지 같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에 맞춰주려 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면 극도로 피곤해졌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도화지를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그걸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배려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배려는 하고 나서도 힘이 남는데, 저는 하고 나면 바닥이 났거든요.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에도 마음속으로 먼저 긴장하고,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톤을 조절하느라 이미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사람이 건강하게 기능하려면 자율성·유능감·관계성 같은 기본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고 봅니다(Deci & Ryan, 2000). 저는 이 틀을 보고, 제 ‘관계성’이 연결이 아니라 평가로 채워지는 순간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관계가 ‘연결’이 아니라 ‘점수판’처럼 느껴지면, 결국 사람을 만나도 쉬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큰 결심보다는 작은 방향을 잡습니다. “나는 하얀 도화지니까 어쩔 수 없어”가 아니라, “내가 내 편이 되는 연습부터 해보자” 같은 쪽으로요.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있고(Neff, 2003), 실제로 저도 ‘내가 나에게 너무 가혹한 날’에 인정 욕구가 더 커진다는 걸 자주 봤습니다.


인정 중독 이미지

평가 대상에서 관계의 주도권으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평가 대상’에서 ‘주도권’으로 초점을 옮긴 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저를 만만하게 보면 어쩌나, 존중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어요. 그래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할수록 오히려 더 평가의 장(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봤습니다.

  • “지금 이 선택은 내가 원해서인가, 좋아 보이기 위해서인가?”
  • “지금 내 머릿속에서 설명문을 쓰고 있다면, 그건 누구에게 제출하려는 건가?”

이 두 질문이 묘하게 현실적이었어요. 인정 욕구를 ‘없애자’가 아니라, ‘끌려가지 않자’로 바꾸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가끔 끌립니다. 다만 예전처럼 자동으로 끌려가진 않으려는 쪽에 가깝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처럼, 가치는 본래부터 있다

만 원짜리 지폐를 구기고 밟아도 구매력이 크게 바뀌지 않듯이, 누가 나를 칭찬하든 무시하든 ‘내 가치’가 통째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감정은 흔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흔들림이 ‘가치의 판결’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게, 제가 요즘 잡고 싶은 방향입니다.

결국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는 핵심은, 인정 욕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의 결정권을 다시 내 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평가를 안 받는 삶이 아니라, 평가 때문에 내 선택이 바뀌는 삶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 저는 그걸 연습하는 중입니다.


참고문헌

  • Leary, M. R. (2005). Sociometer theory and the pursuit of relational value.
  • Crocker, J., & Wolfe, C. T. (2001). Contingencies of self-worth.
  • Deci, E. L., & Ryan, R. M. (2000). The “what” and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 Neff, K. D. (2003). Self-compassion: An alternative conceptualization of a healthy attitude toward one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