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을 받고도 불안한 이유: 가면증후군과 자기의심
칭찬을 받으면 기쁘기보다 먼저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 제 결과물을 보고 “이거 정말 잘 하셨네요”라고 말하면, 저는 반사적으로 “저요? 아니에요”부터 튀어나와요. 겸손해서라기보다, 그 칭찬이 마치 ‘다음에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준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칭찬이 확인이 아니라 시험지처럼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는 “언젠가 들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칭찬이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 가면증후군이라는 이름
가면증후군(Impostor Phenomenon/Impostor Syndrome)은 성취를 해놓고도 그걸 실력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나는 사실 자격이 없는데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해석하며, 언젠가 ‘가짜임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을 반복해서 느끼는 경험을 말합니다. 이 개념은 폴린 클랜스(Pauline Clance)와 수잔 아임스(Suzanne Imes)가 1978년에 처음 정리했습니다(Clance & Imes, 1978).
그리고 이후 대중 매체나 여러 리뷰에서 “많은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 이런 감각을 경험한다”는 식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예: 약 70% ‘추정’으로 언급; Time, 2018).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 감각이 생각보다 흔하다는 점이에요.
저는 발표를 잘 끝낸 날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좋았다고 말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다음엔 이 기준을 못 맞추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칭찬이 제 능력을 증명해주는 말이 아니라, ‘기대치가 한 칸 올라가는 순간’처럼 느껴져서 기쁜 마음이 올라오기도 전에, 방어가 먼저 튀어나와요.
왜 성공이 쌓여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을까: ‘귀인의 방향’
여기서 힌트가 되는 게 ‘귀인(attribution)’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이유가 뭐였지?”를 어디에 두느냐예요. 버나드 와이너(Bernard Weiner)의 귀인 이론은 사람들이 성공과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예: 능력/노력 vs 운/상황)이 이후 감정과 동기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합니다(Weiner, 1985).
가면증후군을 겪을 때는 성공을 ‘내 것’으로 쌓기보다 ‘밖의 것’으로 흘려보내는 쪽에 가까워지기 쉽습니다. “운이 좋았어.” “다들 나를 좋게 봐준 거야.”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야.” 그러면 다음 결과가 나와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각이 남지 않고, 대신 “이번에도 우연이었을 뿐”이라는 불안이 이어져요. 칭찬을 선물로 받기보다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불안을 더 느낀다”는 말이 생기는 이유
이 부담이 꼭 ‘능력이 낮아서’만 생기진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해요.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자기 불편함을 다룬 글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인용된 적이 있습니다(Nature, 2015). 유명인의 사례가 제 경험을 증명해주진 않지만, 적어도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숨통을 틔워주긴 하더라고요.
제 경험상, 성취가 높을수록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잘할수록 기준이 더 세밀해지고, 내가 모르는 것과 부족한 점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칭찬을 받으면 “그래, 나는 괜찮아”가 아니라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해”가 먼저 떠오릅니다. 저는 이게 무능함의 증거라기보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불안을 없애기보다, 다루는 순서를 바꿔보기
저는 ‘없애야 한다’고 마음먹을수록 오히려 더 커지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완화 쪽으로 방향을 잡아요. 혼자만 이런 줄 알고 숨길 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나 요즘 칭찬 들으면 오히려 불안해”라고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비슷한 의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 내 불안이 조금 덜 ‘나만의 결함’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저는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칭찬을 다룹니다. 예전엔 “아니에요”부터 튀어나왔는데, 요즘은 일단 “감사합니다”를 먼저 말하는 연습을 해요. 그 다음에 혼자 있을 때 “내가 뭘 잘해서 이런 말을 들었지?”를 딱 한 줄만 적어봅니다. 거창하게 자기계발을 하려는 게 아니라, 칭찬을 ‘즉시 반박’하는 습관을 조금만 늦추려는 거예요. 어떤 날은 아무 변화가 없고, 어떤 날은 아주 조금 편해집니다. 그 정도면 저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느껴요.
마무리: “들킬까 봐”가 아니라 “남길 수 있게”
가면증후군은 나를 망가뜨리는 불안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내가 그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불안이 나를 계속 ‘숨게’ 만든다면, 그때는 다루는 방식이 필요해요.
저는 요즘 블로그 글을 쓰다가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그냥 운 좋게 읽히는 건 아닐까?” 예전엔 그 생각이 오면 바로 스스로를 깎아내렸는데, 이제는 한 번 더 덧붙입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글을 써냈고, 누군가가 ‘내 마음 같다’고 느끼면 그건 우연만은 아닐 거야.” 칭찬을 믿는 일이 아직 서툴러도, 적어도 제 성취를 전부 버리진 않으려고요.
참고문헌
- Clance, P. R., & Imes, S. A. (1978). The imposter phenomenon in high achieving women: Dynamics and therapeutic intervention. Psychotherapy: Theory, Research & Practice.
- Weiner, B. (1985). An attributional theory of achievement motivation and emotion. Psychological Review, 92(4), 548–573.
- Time. (2018). How to Deal With Impostor Syndrome. https://time.com/5312483/how-to-deal-with-impostor-syndrome/
- Nature. (2015). (Impostor syndrome 관련 에세이/언급) https://www.nature.com/articles/529438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