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상처를 줄까: 의도와 영향이 엇갈릴 때
한동안 자꾸 전에 했던 대화가 생각났어요. 가까운 사람이 힘들다고 털어놨을 때, 저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럼 이렇게 해봐”를 꺼냈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 말이었고, 그 때 당시엔 저도 괜찮게 말한 줄 알았어요.
며칠 뒤 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는 해결책보다 그냥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 저는 억울했어요. 나쁜 마음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알겠더라고요. 내가 선의를 베풀었다고해서 상대가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는 것을요.
이 글은 상처를 준 쪽과 받은 쪽, 둘 다를 위한 글입니다. “나쁜 의도가 없었는데도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되,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게—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아보려 해요.
말은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말은 생각보다 엉뚱한 곳에 도착합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의 경험, 그날의 컨디션, 지금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정도가 달라져요. “살 좀 빠진 것 같은데?”라는 말은, 말한 쪽은 칭찬인데 들은 쪽은 “그동안 살쪄 보였다는 말인가?”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위치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서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내 의도는 나에게 너무 선명해서, 상대도 당연히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이라고 부르기도 해요(Gilovich et al., 1998). “난 좋은 마음이었는데 왜 몰라줘?” 같은 억울함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뜻 아니었어”가 왜 더 막막하게 들릴까
상대방이 상처받았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와요.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사실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상처받은 사람 입장에선 그 말이 더 막막하게 들릴 수 있어요. 상처는 ‘의도’가 아니라 ‘영향’으로 남거든요.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NVC)에서도 갈등을 풀어갈 때 출발점은 ‘해명’이 아니라, 상대가 느낀 감정과 필요(needs)를 먼저 알아주는 쪽에 가깝다고 봅니다(Rosenberg, 2003). 그래서 관계를 유지하는 문장은 “난 그런 뜻이었어”가 아니라 “그렇게 느꼈었구나” 가 중요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 순서를 자주 뒤집어서 일을 더 크게 만든 적이 많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다만 그 마음을 전부 쏟아내면, 대화가 ‘의도에 대한 설명’으로 길어지고, 상대방은 “결국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걸 몇 번을 겪고 나서, 이게 ‘누가 옳냐’라기 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였어요.
좋은 사람도 반복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엇갈림이 자주 생깁니다. 친하니까 더 솔직해지고, 편하니까 더 쉽게 말이 나오거든요. 게다가 상처를 주는 ‘작은 말’이 쌓이면 생각보다 큰 상처가 되기도 해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 연구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작은 언행이 누적되어 실제 피해나 상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Sue et al., 2007). 저는 이걸 이론 이야기로만 보자니 일상 대화에서도 충분히 벌어지는 일들이었어요.
1) 힘들다는데, 나는 너무 빨리 ‘해결’로 들어가던 때
누군가 “요즘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면, 저는 바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해봐.” 저로선 선의였지만 상대가 원한 건 해결책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주는 시간’이었을 때, 조언은 공감이 아니라 평가처럼 들릴 수 있겠더라고요. 제 조언이 틀렸다가 아니라, 그 순간 상대에게 필요했던 것이 뭐였냐가 핵심이었어요.
2) 기준을 말했는데, 상대는 ‘판정’으로 들었던 때
“나는 그거 괜찮았는데.” “다들 그렇게 하더라.” 저는 분위기를 안정시키려고 한 말이었는데, 상대에게는 “너만 유난이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영역이 다름을 잊고, 저만의 기준을 ‘답’처럼 제시해버린거죠.
3) 친하다는 이유로 가볍게 이야기 했다가 신뢰가 흔들렸던 때
상대가 나에게만 말한 이야기를,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에게 흘려버린 적이 있어요.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내가 한 이야기가 소문이 될 수 있다’는 신호가 되었어요. 악의가 없었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진 않았습니다.
마무리 — 설명보다 먼저, 한 번만 인정하기
좋은 사람도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이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의도는 좋았다는 사실로 상대가 받은 상처를 없애거나 지워주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누군가 “그 말이 상처였어”라고 말할 때, 의도를 설명하고 싶은 충동을 조금만 늦추려고 합니다. 먼저 이 말을 꺼내보려고요.
“그렇게 들렸을 수 있겠어. 그게 상처였다는 거 이제 알겠어.”
억울함이 없진 않지만 그 순서 하나로 대화를 바꿔갈 수 있습니다. 내 의도만을 설명하는게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부터 생각하는게 좋ㅅ겠습니다.
참고문헌
- Gilovich, T., Savitsky, K., & Medvec, V. H. (1998). The illusion of transparency: Biased assessments of others' ability to read one's emotional stat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5(2), 332–346.
- Rosenberg, M. B. (2003). Nonviolent Communication: A Language of Life. PuddleDancer Press.
- Sue, D. W., et al. (2007). Racial microaggressions in everyday life. American Psychologist, 62(4), 271–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