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은 위선일까 (상냥함, 본모습, 단정의 위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저는 일부러 겉모습을 바꿔 격식있게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덜 흔들렸고, 말도 또렷해졌거든요. 그 모습이 ‘진짜 나’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덕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언제나 상냥하던 사람이 갑자기 차갑게 대한다면, 그건 가면을 벗은 그 사람의‘진짜 모습’일까요? 사회에서 만난 상냥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차가워졌을 때,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가면이 꼭 위선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더 외향적이고 어른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려 애쓴 적이 있습니다. 본래 성격과는 조금 달랐지만, 맡은 역할을 수행하려면 필요한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persona)는 사회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 개인이 쓰는 ‘공적인 얼굴’ 혹은 ‘가면’에 가깝습니다(IAAP, n.d.). 저는 그 개념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면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더군요. 불안한 상황에서 제가 기능을 해낼 수 있었던 건 그 장치 덕분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조금 더 전문가처럼 행동하거나, 회의에서 침착하게 말하려는 노력도 결국은 ‘사회적 역할’과 맞물려 있습니다. 고프만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상황에 맞춰 자신을 제시하며, 그 과정에서 ‘역할에 맞는 나’를 구성하기도 합니다(Goffman, 1959).

제가 보기엔 가면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가면이 ‘상황에 맞춘 조절’이 아니라, 타인을 속이거나 해치기 위한 도구로 굳어질 때입니다. 다시 말해, 가면 자체가 곧 위선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 가면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고 반복되는지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느꼈습니다.

상냥함도 가면이 될 수 있다

저는 늘 상냥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차갑게 말하는 장면을 직접 겪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했고, ‘상냥함도 가면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는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 이거였구나”라는 판단이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단정은 관계를 더 빠르게 망가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타인의 행동을 성격 탓으로 과대해석하고, 상황 요인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습니다. 이 습관은 기본 귀인 오류로 설명되곤 합니다(Ross, 1977). 저 역시 그 틀 안에서, 한 번의 차가움을 ‘정체’로 해석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태도 변화에는 실제로 여러 변수가 섞일 수 있습니다. 그날의 컨디션, 개인적 스트레스, 관계에서 느낀 불편함, 혹은 말하지 못한 기대 불일치가 겹칠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요즘, ‘이게 진짜다’ 같은 결론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추측하고 있는가”를 먼저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 구분만으로도 감정이 덜 휩쓸릴 때가 있었습니다.

거리두기가 필요한 순간

그렇다고 모든 변화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 관계에서 존중이 일관되지 않으면 거리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한 번의 사건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반복되는 패턴을 조금 더 보려고 합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불편함이 누적된다면 그건 단순한 컨디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저에게 ‘거리두기’는 상대를 벌주는 방식이라기보다, 제 삶을 운영하기 위한 조정에 가까웠습니다. 상대의 의도를 끝까지 해석하려 애쓰는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접촉의 범위를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쪽이 오히려 마음을 덜 소모시켰습니다. 경계(boundary)는 상대를 통제하는 기술이라기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분명히 하고 그 선에 맞춰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으로 설명되곤 합니다(Peterson, 1998).

거리를 두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순간도 있었습니다. 억지로 상대의 마음을 ‘판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고, 제 감정과 시간을 지킬 수 있었거든요. 관계는 양방향이라서, 한쪽만 계속 무리하면 결국 균형이 깨진다는 사실도 더 또렷해졌습니다.

관계 기준을 세우는 현실적 태도

결국 저는 타인의 속마음을 맞히려 하기보다, 관계의 기준을 세우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속마음은 끝까지 확정하기 어렵지만, 행동과 태도는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주로 봅니다. 상대의 태도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지, 그리고 존중이 유지되는지입니다.

물론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늘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분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거나, 말과 행동이 반복적으로 어긋난다면 관계는 불안정해집니다. 반대로 완벽하진 않아도, 설명이 가능하고 조정이 가능한 관계는 유지하기가 훨씬 수월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상대의 본모습’이라기보다, ‘우리 관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가면과 진심, 상냥함과 차가움 사이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가면 자체를 위선으로 단정하기보다, 그 가면이 반복적으로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속마음을 읽으려 애쓰기보다는, 반복되는 태도 앞에서 내가 지킬 기준을 세우는 쪽이 제게는 더 건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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