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운 이유: 피상적 관계와 진짜 연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로움을 '혼자 있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진짜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단체 채팅방에서 끊임없이 알림이 울리고, 주말마다 약속이 잡혀도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기진맥진한 느낌. 이건 단순히 내향적인 성격 탓이 아니라, 우리가 '연결'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때로는 정서적 연결감이 약한 접촉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연결이 약한 관계가 소진을 부르는 이유
예전엔 모임에 안 나가거나 단톡방이 조용하면 괜히 불안했습니다. 모임이 계속되거나 대화가 계속 이어져야 제가 관계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임이 잦거나 단톡 알림이 쌓일수록 몸과 마음이 피곤해졌습니다. 농담에 맞장구치고, 빠르게 대답하고, 분위기를 맞추는 일이 점점 '할 일'처럼 느껴졌죠.
저는 이 과정을 흔히 말하는 '감정 노동(Emotional Labor)'과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다만 이 개념은 원래 직장처럼 역할이 분명한 환경에서 감정 표현을 관리하는 맥락에서 자주 쓰이기 때문에, 사적인 관계에서는 '감정 조절'이나 '감정 관리(emotion work)'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Hochschild, 1979). 어쨌든 중요한 건, 제 진짜 감정을 잠깐 접어두고 상황에 맞는 반응을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쓴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결감이 낮거나 관계에서 긴장이 지속될 때 스트레스 반응이 커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Hopf et al., 2022). 반대로 가까운 관계에서 신뢰와 유대가 형성될 때, 마음이 안정되는 경험이 늘어나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다만 제게 더 확실했던 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날은 몸이 풀리고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남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제 몸은 어떤 관계가 '내게 맞는지, 덜 맞는지'를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침묵이 정직하게 느껴지는 순간
많은 분들이 "혼자 있으면 우울해질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실제로 써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집에 와서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몸이 풀리고 숨이 쉬어졌습니다. 한때 저를 외롭게 만들었던 침묵이 이제는 정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죠. 고립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들으려고 했고, 그보다 더 깊이 스스로 느끼는 것을 들으려고 했던 겁니다.
이런 변화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련의 작은 내적 문턱을 넘는 과정이었죠. 처음에는 단체 채팅이 생명줄처럼 느껴지지 않게 됐고, 그다음엔 파티가 퍼포먼스 예술처럼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가벼운 대화조차 노력이 필요하게 느껴졌어요.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는 있지만 그 무언가가 제 감정을 계속 긁어대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이런 과정을 '개성화(Individualization)'라고 불렀습니다. 개성화란 집단의 기대나 사회적 가면에서 벗어나 진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심리적 성숙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는 기존 관계망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이건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가장할 수 없게 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IAAP, n.d.).
- 소음 속에서 활기를 얻던 시절이 끝남
- 침묵이 위협이 아닌 안식처로 느껴짐
- 겉도는 대화가 오히려 에너지를 소진시킴
-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남
저는 외로움이 단지 '사람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정서적 연결감이 부족할 때 더 선명해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마음이 잘 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건 개인의 성격만으로 설명되기보다, 현대 사회가 양적인 관계와 빠른 교류를 쉽게 만들면서 생기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연결을 기다리는 법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을 밀어내는 게 아닌지, 너무 까다로운 게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단톡방에서 빠지는 걸 무조건 '성장'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날은 그냥 회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유를 딱 잘라 판단하기보다, 제가 어디서 지치는지 관찰하고 필요하면 연락 빈도나 참여 방식을 조절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진짜 연결은 명령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계획할 수도 없고, 가벼운 커피 모임으로 나타나게 할 수도 없죠. 오히려 공명(Resonance)을 기다리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공명이라는 말은 관계를 ‘연출’로 유지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닿고 응답하는 경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도 쓰입니다(Rosa, 2018). 저는 이 단어가, 억지로 연결을 만들기보다 ‘내가 덜 연기해도 되는 관계’를 기다리는 마음을 설명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결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와도 처음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거의 지루하고 단순하고 절제된 느낌이 들거든요. 하지만 그때 제 신경계가 말해줍니다. "이건 달라. 긴장도 없고, 해석할 필요도 없고, 사회적 곡예도 필요 없어. 그냥 존재할 뿐이야."라고요.
최근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에서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행복과 건강을 결정짓는 요인이 관계의 '수'만이 아니라 '질'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Mineo, 2017). 많은 사람과 넓게 교류하는 것보다, 소수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관계가 심리적 안녕감과 신체 건강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결국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어도 마음이 잘 닿지 않았던 시간 때문에 더 커졌던 때가 많았던 겁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이해받기 위해 제 자신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해가 저를 찾도록 합니다. 방에 맞추기 위해 제 성격을 다듬지 않고, 방이 제게 맞는지 드러내도록 합니다. 고립이 형벌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여지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버렸던 저로부터의 보호로 이해합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제 깊이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고, 제 시간이 더 이상 가볍지 않고, 제 존재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완고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가짜로 꾸며낼 수 없는 방식으로 부드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참여를 위해 평화를 기꺼이 거래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우리는 외로운 게 아닙니다. 그저 되어야 했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공간에 있을 뿐입니다. 그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 더 크게 울립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메아리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마침내 응답하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진짜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이미 가장 중요한 사람과 연결되고 있는 겁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말이죠.
참고문헌(더 읽기)
- Hochschild, A. R. (1979). Emotion Work, Feeling Rules, and Social Structur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https://www.jstor.org/stable/2778583
- Hopf, D., Schneider, E., Aguilar-Raab, C., Scheele, D., & Morr, M. (2022). Loneliness and diurnal cortisol levels during COVID-19 lockdown. https://pubmed.ncbi.nlm.nih.gov/36064567/
- IAAP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Analytical Psychology). (n.d.). Individuation. https://iaap.org/jung-analytical-psychology/short-articles-on-analytical-psychology/individuation-2/
- Mineo, L. (2017). Good genes are nice, but joy is better (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 소개). https://news.harvard.edu/gazette/story/2017/04/over-nearly-80-years-harvard-study-has-been-showing-how-to-live-a-healthy-and-happy-life/
- Rosa, H. (2018). The idea of resonance as a sociological concept (개념 소개 글). https://globaldialogue.isa-sociology.org/articles/the-idea-of-resonance-as-a-sociological-concept/